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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3. 과거 수보 보서 〉3. 무인보(1998년)서문 都有司兼 大同譜編纂委員長 23世孫 圭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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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무신보(1968년)서문
戊申譜序 古今之名門右族靡不有譜譜者不忘本而收宗族也孝悌由是而生忠義由是而立然則譜牒之關於世敎也顧不重且大歟故程張二夫子之訓歐蘇兩大家之説嘗惓惓于此人皆可以誦法而勸戒也我東趙氏之籍玉川者世德源流厥惟久矣刱譜以來凡九修而又經四十餘年族蕃散居遂成路人勢所難免是以遠近合謀圖所以重刊大譜者固甚善矣按玉川氏著自麗代名德相望太師公之奉公盡忠農隱公之協志圃冶樂齋虔谷之守義自靖光陽節制之有善治績竹村龜川父子駢義同死六臣此數公之節義當與天壤俱存而司正昆季克世孝友相好四昆季壎箎迭唱怡怡有樂此外孝烈著稱於鄉邦風聲於來後指不勝摟實非他族之所能及矣烏不盛哉譜將登印洪燮淳表遠來要余以弁文噫以宋朝大邦尚無百年之家今趙氏文獻之徵於久遠可謂難矣凡同斯譜者苟能交修胥勗纘繩先業不墜其家聲以至俾益世道則自後門戶之益昌大豈不兆於斯歟請以是忘拙書此 歲戊申端陽節 恩津 宋在晟 序 무신보서(戊申譜序)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할 것 없이 名門과 貴族은 다 족보를 가졌는데 족보는 근본을 굳게 하고 겨레를 거두는 것이다. 효제(孝悌)가 이로부터 나고 충의(忠義)가 이로부터 서니 보첩(譜牒)의 세교(世敎) 에 유관함이 重大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정장(程張) 二夫子의 가르침과 구소(歐蘇) 兩大家의 말씀이 일찍 이에 간절하셨으니 사람이 다 본받아 권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 東方의 玉川趙氏는 世德의 근원과 흐름이 오래되어 初譜를 모신 뒤로 무릇 九修를 했고 또 四十년을 지내니 겨레가 번성하여 各地에 흩어져 살므로 마침내 路上之人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遠近宗族이 합의하여 大同譜를 편수하기로 한 것은 진실로 善處한 일이라 하겠다. 안찰하니 玉川氏는 麗朝부터 나타나 名德을 서로 이었는데 太師公의 나라에 盡忠함 과 農隱公의 圃隱 冶隱과 同志한 것이며 樂齋公 副正公의 不二節을 固守한 것과 光陽公 節制公의 善治한 業績이며 竹村公 龜川公 父子는 충절을 잡아 六臣과 함께 죽었으니 이 數公의 절의는 마땅히 天地로 더불어 함께 남을 것이요. 司正公 兄弟의 세상에 드믄 孝友와 相好四昆季의 흙장 고치고 피리 불며 화락차담한 우애며 이외에도 孝烈이 고을과 나라에 登聞되고 來世에 벼리를 드리운 자 손가락으로 이겨 끌 수 없으니 진실로 다른 씨족의 능히 미칠 바 아니로다. 보첩을 장차 인출하게 되니 洪燮·淳表가 멀리 나를 찾아와서 序文을 써 달라하였다. 아! 中國宋朝 큰 나라에도 오히려 百年之家가 없었는데 이제 趙氏가 문헌을 久遠하게 증고한 것은 가히 어려운 일이라 하겠도다. 무릇 이 보첩을 같이 한 자는 진실로 능히 서로 닦고 서로 힘써 先業을 계승하여 그 家聲을 떨어뜨리지 않고 世道에 보탬이 된다면 이 뒤로부터의 門户가 더욱 昌大한 것 은 어찌 이에 연유한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 청에 따라 이로써 우졸함을 잊고 이와 같이 씀. 歲戊申端陽節 恩津 宋在晟 序 註:程顥-宋代大儒 字는 伯淳 受學于周茂叔道學의 師宗世稱明道先生性溫和不見怒色 程顥-宋代大儒 字는 伯淳 受學于周茂叔道學의 師宗世稱明道先生性溫和不見怒色 張載-宋代大儒 世稱橫渠先生 宋朝六賢의 一 歐陽修-字는 永叔 晩號 六一居士 宋代文章 有新唐書, 五代史의 著書, 諡文忠 蘇洵-字는 明允 號는 老泉 宋眉山人 年二十七에 發憤讀書 通貫經史 百家書 執筆頃刻成數千言有老泉先生全集 圃冶-鄭圃隱과 吉冶隱을 말한 것인데 事行은 忠獻公神道碑 銘註에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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